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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와 교회의 오랜 전통이 오늘에 까지 이어지게 된 까닭

4.        절기와 교회의 오랜 전통이 오늘에 까지 이어지게 된 까닭





4-1. 노회한 정치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획 – 종교화해운동

4-2. 카톨릭 교회의 교세확장 전략 – 원조 에큐메니컬 운동

4-3. 로마 카톨릭 교회가 승리를 선포한 까닭

4-4. 아론의 금송아지는 이교주의의 상징물 이었나

4-5. 혼합주의가 문제다










4-1. 노회한 정치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획 – 종교화해운동




4-1-1.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이행할 때 대관식을 치루지 않았던 로마제국

4-1-2.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고민 – 이민족의 도전과 잦은 반란, 제국의 반항아 기독교 및 자신의 후계 문제

4-1-3. 안팎으로 노쇠해진 로마 제국 최후의 생존전략 – 기독교의 국교화 또는 제도권으로의 유인책






4-1-1.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이행할 때 대관식을 치루지 않았던 로마제국




로마는 우리나라 처럼 반도국가입니다.

삼 면이 바다로 열린 반도국가의 특성 상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자유로운 해상 무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적들을 소탕하는 임무는 천재적인 전략가인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맡겨졌습니다.


한편 오늘날 프랑스와 영국에 해당하는 지역의 이민족들을 평정하여 제국의 변방을 안정시키는 임무는 또 다른 천재적인 전략가인 로마 장군 카이사르에게 맡겨졌습니다.


두 사람의 뛰어난 전략가는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운명과도 같이 한 사람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쟁, 즉 결승전을 벌이게 됩니다.


승리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한 후 단한번의 회전으로 폼페이우스를 격파한 카이사르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에 로마는 원로원에 의한 느슨한 공화정 체제였지만 광대해진 제국의 변방에서 발생하는 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처하기엔 원로원 체제는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수 백 여명의 원로원 의원들이 서로 난상토론을 거쳐 어떤 의미있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보다는, 정확한 사태파악과 신속한 처리능력을 소유한 유능한 한 사람에게 일임하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황제에 의한 통치체제가 제국의 미래로 될 줄 미리 간파하였지만, 자기가 황제로 인정받기엔 공화정 체제를 지지하는 로마 시민들의 반발이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성대한 대관식을 치뤄 정통성을 갖춘 로마 황제로 등극하는 대신, 원로원에게 자기를 ‘로마 시민 번호 1번’으로 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즘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군번 1번’이 되는 영예를 달라고 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호칭은 처음에는 명예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지만 신속처리를 요구하는 급변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원로원으로부터, 아니 로마시민들로 부터 사태해결을 위임받은 대표로서의 지위로 곧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대한 대관식은 없었지만 카이사르는 자기 의도대로 ‘황제’와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원사모’ (원로원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음모를 꾸미게 되고 카이사르는 암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요청을 거스를 순 없었든지 결국 황제정 시대로 옮겨가게 됐습니다.


즉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양아들이었던 옥타비아누스가 이 와중의 혼란을 평정하고 그 후 초대황제로 됐습니다. 누가복음 2:1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 입니다.


물론 동방나라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제국처럼 성대한 대관식은 없었습니다.



황제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세력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4-1-2.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고민 – 이민족의 도전과 잦은 반란, 제국의 반항아 기독교 및 자신의 후계 문제




로마제국의 특징은 광대한 ‘포용력’입니다.


비록 어제, 전쟁에서 진 적들일지라도 제국의 통치체제를 받아들이면 오늘, 같은 로마시민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부자세습이 아닌 군사적 실력에 의해 다음 황제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들은 각기 장단점이 있었는데,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잦은 군사반란이었습니다.


제국 내부에 각 시대별로 단 한사람의 유능한 지도자만 등장하면 별 문제가 없겠는데, 문제는 둘 이상이 나와 서로 싸우는 경우, 빠르게 국력을 소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로마제국의 군대라도 동지애는 사라지게 되고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이 거듭될수록 제국의 통합은 심각하게 깨지게 됩니다.




제국의 변방으로부터 끊임없이 이민족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에서 지리한 내전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한 제국 로마를 안정시켜야 하는 임무.



이것이 바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고민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주후 235년에서부터 284년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23명의 황제가 난립하는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균재임기간이 2년 남짓 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이런 내전을 통해 황제가 됐습니다.


다시는 이와 같이 내전에 의해 황제가 되는 일이 없도록 황제에게 감히 도전하지 못할 위엄을 세울 계획이었습니다.



이른바 ‘왕권신수설’, 더 나아가 ‘제신일체’ 입니다.



제국 통합의 구심점인 황제를 신격화 하려는 이 시도에 기독교가 결사반대해 오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그간의 박해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황제 신격화를 우상숭배로 여기는 통합의 걸림돌이 됐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다른 꾀를 내야만 했습니다.






4-1-3. 안팎으로 노쇠해진 로마 제국 최후의 생존전략 – 기독교의 국교화 또는 제도권으로의 유인책




그 시대의 반항아,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만든 전략입니다.



이는 기독교를 제도권으로 유인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였으므로 유일 황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할 시대적 사명에 개념적으로 잘 부합하였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와 화합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황제가 나서서 기독교 지도자들과 ‘정치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할 어려운 숙제로 남겨졌습니다.







4-2. 카톨릭 교회의 교세확장 전략 – 원조 에큐메니컬 운동





‘카톨릭교회의 유일신 교리는 수호하되,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들과 화해시켜라.’




4-2-1. 당대의 신흥종교 카톨릭교회의 문제점 – 교리 확립과 그 과정의 정통성 시비

4-2-2. 로마카톨릭의 창시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부지리 – 뜻밖의 대성공





4-2-1. 당대의 신흥종교 카톨릭교회의 문제점 – 교리 확립과 그 과정의 정통성 시비




국교로 승인한 카톨릭교회에 곧 여러 문제점들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은 당시에 기독교가 신흥종교 였기 때문에 잘 갖춰진 교리체계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님이시고 제자들은 예수의 증인의 역할에 머물러 있었고,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곧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제자들은 곧 다시 오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할 사명에만 충실했을 뿐 교리의 체계를 갖춰 장기전을 준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편 세월이 조금 흐르면서 실제 증인이었던 제자들은 대부분 복음 사역 중 순교를 당하였기 때문에 글로 남길 여유도 없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공의회의 주요안건은 주요 교리들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국 각지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소집해 모아놓고 보니 상당히 심각한 교리의 차이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주후 70년, 유대의 반란과 이어진 추방에 따라 각지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제각기 수많은 지역교회들을 각지에 세웠는데 슬그머니 들어 온 다른 복음들이 암암리에 퍼져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고린도후서 11 : 4)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 : 6-9)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몰래 들어왔으나 (갈라디아서 2 : 4)





대표적인 예가 삼위일체론과 이에 따른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확립하는 과정에 많은 논란과 반목이 생겨났고, 결국 누군가의 힘을 빌어 유권해석으로 확정해야 했고 그 과정에 기독교회는 정통과 이단으로 나뉘게 됐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여 바른 교리를 확립하였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 과정 상 자체적으로 믿음의 형제자매 끼리 화목하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세속권력인 황제의 권위를 빌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결국 황제에게 휘둘리게 되는 카톨릭 교회의 약점이 됐습니다.






4-2-2. 로마카톨릭의 창시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부지리 – 뜻밖의 대성공





제국의 반항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 벌어진 교리논쟁에서 단단히 약점을 잡은 황제는 카톨릭교회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두번째 숙제, 즉 제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이방종교와의 화해를 추진한 것입니다.




황제의 요구는 이전처럼 각기 독립적으로 화목하게 지내자는 정도가 아니라, 궁극적인 화해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방종교와 화해하자면 그들의 신과 교리까지 인정해야만 했고, 특히 대부분의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의 교리까지도 수용해야 했습니다.


즉 거기에도 구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14 : 6)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4: 12)






4-3. 로마 카톨릭 교회가 승리를 선포한 까닭




4-3-1. 로마 카톨릭교회의 대성공 --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든 포도주 칵테일 잔을 높이 들어라

4-3-2. 교회의 후견인 로마제국은 스러지고 마침내 권력승계까지 마친 로마 카톨릭교회의 승리

4-3-3. 스스로 자기 꾀에 빠진 로마 카톨릭교회의 승리에 따른 값비싼 댓가






4-3-1. 로마 카톨릭교회의 대성공 --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든 포도주 칵테일 잔을 높이 들어라





“그들이 {주}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니라.” (사사기 2:13)





카톨릭 교회의 대응은 포도주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교주의로 부터 수용한 것들을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채색하는 것입니다.


게 중에는 이교도들이 갖춘 칭호와 직분제도를 본 따 오는 것과 제사의식을 수용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독교화를 이른바, 위대한 카톨릭교회의 승리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교도들의 제도와 의식을 기독교화 함으로써 혼란을 줄여 이교도들을 쉽게 기독교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교도들이 숭배하던 수많은 신들을, 그 신들 사이의 위계를 따져 그에 걸맞는 이른바 카톨릭교회의 성인으로 변모시켜 그들에게 친숙한 우상들을 만들어 교회 안에 모시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목적은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었지, 하나님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알기 쉽게 기독교를 전하고 하나님께도 예배드리는 나름대로 절묘한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4-3-2. 교회의 후견인 로마제국은 스러지고 마침내 권력승계까지 마친 로마 카톨릭교회의 승리





로마제국의 국교로서 하나님의 은총에 비견되는 황제의 후견을 힘입어 카톨릭교회의 교세는 날로 확장되어 갔고,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를 가리켜 더욱 뚜렷해진 로마제국의 몰락 징후라고 부릅니다.



로마 황제가 한 가지 몰랐던 점은 이와 같이 국교로 인정한 카톨릭교회가 제국에 수혈된 새 피가 아니라 빠르게 이교주의로 적응해 퍼져간 바이러스 였다는 점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은 카톨릭교회를 제 뜻대로 움직일 정치적 능력이 있었지만 후계 황제들은 곧 카톨릭 교회로부터 거꾸로 휘둘리게 됐던 것입니다.



이는 세속권력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잃어버리고 세속권력을 종교집단에게 위임하는 패착을 낳게 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제국에 도전하는 이민족들에게는 종교적 가르침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에 곧 제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그 결과, 신심이 꽤 돈독했던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이제 이름뿐인 자신의 권좌를 카톨릭 로마교구의 주교에게 선양한다는 교서를 남기게 됩니다.


드디어 교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또 하나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4-3-3. 스스로 자기 꾀에 빠진 로마 카톨릭교회의 승리에 따른 값비싼 댓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여러 이교주의적인 의식들이 교회 안으로 유입돼 교회의 의식들과 혼합된 것을 카톨릭 교회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교도들과 그들의 제도와 의식을 성공적으로 기독교화 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승리에 따른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됐는데 이는 바로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이방종교의 의식과 뒤섞어 놓은 결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빛난 믿음의 승리가 허무하게 빛이 바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느니라.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헛되이 수고하였을까 너희로 인해 염려하노라.” (갈라디아서 4:8-11)






4-4. 아론의 금송아지는 이교주의의 상징물 이었나





시나이산 아래에서 모세를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부추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매 백성이 그것을 보고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주의할 점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배반하고자 이방신의 형상을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4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므로”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그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절기’ 곧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라고 일컬었습니다.




5 “아론이 그것을 보고 그것 앞에 제단을 쌓고 선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주}를 위한 명절이라, 하니라.”




다만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이교주의적 의식들이 혼합됐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교주의적 의식대로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옷을 벗고 맨몸으로 의식을 행했습니다.



6 “다음 날에 그들이 일찍 일어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가져오며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 모세가 진영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곧바로 송아지와 춤추는 것을 보고…”

25 “¶ 모세가 보니 백성이 벌거벗었더라. (아론이 그들로 하여금 벌거벗게 하여 그들의 원수들 가운데서 수치거리가 되게 하였더라.)”




그들은 이런 의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원래 의도가 어떠하든 우리는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짓되며 혐오스런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7 “¶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였느니라.”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에서 속히 떠나 자기들을 위해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에게 경배하며 그것에게 희생물을 드리고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였도다”





4-5. 혼합주의가 문제다





다른 예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광야 40년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막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동시에 이방신들의 의식도 더불어 섬겼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낫게 섬겼습니다.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희생물과 헌물을 내게 드린 적이 있었느냐?

오히려 너희가 너희의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형상들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너희 신의 별을 가지고 다녔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마스커스 너머로 포로가 되어 가게 하리라.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인 {주}가 말하노라.” (아모스 5:25-27)




“그때에 [하나님]께서 돌이키시고 그들을 내주사 하늘의 군대에게 경배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들의 책에 기록된바, 오 너희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죽인 짐승과 희생물을 내게 드린 적이 있었느냐?

참으로 너희가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신 렘판의 별 곧 너희가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들을 들고 다녔은즉 내가 너희를 바빌론 너머로 끌고 가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행전 7:42-43)




이런 혼합주의가 바로 배교의 역사입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배교의 역사는 세월이 지나면서 사마리아 땅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각 민족이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산당들의 집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하던 도시들에서 그와 같이 하여

바빌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구드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며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고

아바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불에 태워 스발와임의 신들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더라.” (아모스 17:29-31)



유대 땅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해서 납작한 빵을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내 분노를 일으키느니라.” (예레미야 7:17-18)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서도 혼합주의에 의한 배교 행위가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이 일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같은 날에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안식일을 더럽혔도다.

그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을 죽여 자기들의 우상들에게 바치고는 바로 그 날에 내 성소로 들어와 그것을 더럽혔나니, 보라, 그들이 내 집의 한가운데서 이와 같이 행하였도다.” (에스겔 32:38-39)





이런 혼합예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찬양과 예배를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약속하신 땅에서 그들을 내쫓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보건대 우리 하나님은 결코 이교주의와 혼합된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게 하며 그분만 섬기라.” (사무엘상 7:3)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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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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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52 Apr 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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